사단법인 원심창의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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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삼정의거

의거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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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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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평화통일
운동의 전개
원심창의사의 발자취

1933년 3월 감옥에 갇힌 원심창은 1945년 8월 15일이 한참 지난 10월 10일 출옥하였다. 일제가 패망 직후에도 여전히 포츠담선언에서 규정한 정치범 석방을 미뤄왔기 때문이다. 한국측 정치범석방촉진연맹이 미군사령부 앞에서 대중집회를 열고 맥아더 총사령부를 찾아가 항의하자, 석방명령이 10월 8일부터 시작되었다. 이로써 일본 규슈 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鹿兒島)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원심창이 10월 10일에 이르러서야 풀려났다. 그는 곧 귀국선을 타고 11월경 고국으로 귀환하였다.

하지만 해방된 조국에서는 미·소 양국에 의한 신탁통치안이 알려지면서 좌우익의 찬반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에 원심창은 재일한인사회의 안정과 수습을 위해 1946년 2월 무렵 일본으로 돌아왔다. 당시 재일한인사회에서는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을 조직하였고, 일제에 협력했던 우익인사들이 조선건국촉진청년연맹(건청)을 결성하여 대립하였다.

이에 원심창과 이강훈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해 새로운 민족운동단체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즉 1946년 2월 8일 동경 나가노(中野) 구민회관에서 열린 신조선건설동맹 결성대회에서 위원장은 오랜 투옥 끝에 갓 출옥한 박열이, 부위원장에 원심창과 이강훈 등이 선출된 것이다. 동맹은 그해 8월에 열린 제2차 전체대회에서 재일한인들의 생활보호와 권익옹호를 위해 재일본거류민단(이하 민단)으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민단의 초대단장은 박열이, 부단장에 이강훈이 맡았고, 원심창은 초대 사무총장에 선임되었다.

이 시기에 민단은 본국 및 각국 대사관에 결의문을 보내고 민단신문을 창간하였다. 또한 재류동포의 인권과 생활권 확보를 위해 사업육성회와 민단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일본 정부의 외국인등록령 시행에 대한 반대운동도 전개하였다. 아울러 민단은 기본강령에서 “본국 또는 해외의 여하한 사상이나 정치의 흐름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박열 단장이 미국 방문길과 귀국길에 일본에 들른 이승만 박사를 만나 진로를 상의한 이후, 급격히 단독정부 수립 지지 쪽으로 기울었다.

원심창은 1948년 10월 4일 이강훈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이듬해 3월 부단장으로 복귀하였다. 나아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3월 단장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곧 민단 산하에 전재원호사업위원회를 구성하여 전쟁의 참화로 인한 부상자들을 도왔다. 나아가 그는 민단과 조련의 중도적 인물들을 규합해 1954년 12월 5일 남북통일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에 민단측은 본국 정부가 반대하는 일이라는 명분으로 동경본부 단장으로 있던 원심창과 권일을 제명처분하였다. 그럼에도 원심창은 이듬해 1월 남북통일촉진협의회(이하 통협) 전국발기인대회를 열고 중앙대표위원과 사무국장을 맡아 사실상 단체를 이끌었다.

이후 통협은 좌우익의 합작을 유도해 함께 3·1운동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는 한편, 평화통일을 위한 원자전쟁 반대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아시아 제국회의에 통일문제에 관한 요청문을 발송하는 등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은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은 민단 중앙의 견제와 조총련의 조직적 방해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원심창은 ≪통일조선신문≫을 창간해 대표상임고문을 맡았고 1965년 한국민족자주통일동맹 일본본부를 결성해 대표위원으로 선출되어 통일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외국군 철수와 남북협상을 통해 신뢰를 구축한 다음, 자유총선거에 의한 통일중앙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1971년 7월 4일 건강악화로 일본동경에서 타계하였다.

원심창의 평생동지인 이강훈은 “그는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고 희생하려는 봉사정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찾을 수 없으리만치 독특한 마음씨의 소유자”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성격은 지극히 온순하고 인자하였지만, “조국과 민족에 해를 끼치는 무리에 대해서는 강한 적개심과 용맹을 갖추어 민족도의심과 지용(智勇)을 겸비했다”고 평하였다. 원심창의 65년이란 짧지만 굵은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서, 평생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에 철저히 저항하면서도 자유와 평등, 평화통일에 앞장섰던,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해 애쓴 한 시대의 아나키스트의 꿈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